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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머문 골목에서10

#2. 공방의 문을 열다 #2. 공방의 문을 열다 새벽 다섯시, 수아는 잠에서 깼다. 아직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녀에게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다. 조용한 새벽에 흙을 만지는 것, 그것이 하루를 시작하는 그녀만의 의식이었다. 공방 한편에 놓인 간이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수아는 창밖을 바라봤다. 맞은편 서점은 아직 문이 닫혀 있었고, 골목은 고요했다. 어제 그 서점 사장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조용하고 신중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을 때도 성의껏 안내해주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흙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이 냄새만큼은 프랑스에서나 여기서나 똑같았다. 수아는 작업복으로 갈아입으며 지난 이년간의 시간을 떠올렸다. 파리 장식미술학교에서의 마지막 해, 지도교수였던 장 피에르 마르탱의 차갑고 날카로운 목소.. 2025. 9. 24.
#1. 서점의 봄 #1 서점의 봄 아침 여덟시, 민호는 익숙한 소리에 잠을 깼다. 골목 어귀 카페에서 들려오는 원두 갈리는 소리였다. 이층 원룸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언제나 같았다. 좁은 골목 양편으로 늘어선 낮은 건물들, 그 사이로 분주히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낡은 원목 문짝을 밀어내며 민호는 오늘도 작은 서점 '책향'의 하루를 시작했다. 골목 안쪽 이층짜리 건물 한 모퉁이를 차지한 이곳은 그가 물려받은 유일한 유산이었다. 아버지가 떠난 지 벌써 삼 년, 처음엔 팔아버리려 했지만 결국 직접 운영하게 된 터였다. 당시 회사 동료들은 미쳤다고 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적자가 뻔한 독립서점을 운영하겠다니. 하지만 민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버지가 평생 아껴온 책들을 그냥 처분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 골목.. 2025. 9.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