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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머무는 시간

2부: 바다와 상처_#5. 조개잡이 축제

by emilore 2025.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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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조개잡이 축제

 

마을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아린은 집 앞에 붙은 알림판을 보고 있었다. '제25회 조개잡이 축제'라고 큼직하게 쓰여 있었다. 날짜를 보니 이번 주말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이 축제가 일 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행사였는데, 이제는 그저 소음만 들릴 것 같아 걱정이었다.

 

"아린아!"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옆집에 살던 김순자 아주머니였다.

 

"순자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아린이 인사했다.

 

"어머, 정말 많이 컸네. 도시에서 고생 많이 했지?" 아주머니가 아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축제 때 나올 거지? 오랜만에 마을 사람들 다 모이는데."

 

"아, 그게..." 아린이 망설였다. 사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는 피하고 싶었다. 준이 이야기가 나올까 봐 걱정되기도 했고, 아직 마을 사람들과 어울릴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뭘 망설여. 혼자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잖아. 나와서 사람들도 만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아주머니가 아린의 팔을 살짝 잡아당겼다. "도현이도 올 거야. 등대 관리소에서 안전 관리 일을 맡았거든."

 

도현 이야기가 나오자 아린의 마음이 더욱 복잡해졌다. 카페에서 만난 후로 며칠째 그를 피하고 있었는데, 축제에서 만나게 될 것 같았다.

 

"생각해볼게요." 아린이 애매하게 대답했다.

 

"아이고, 뭘 생각해. 토요일 오전 열 시에 시작하니까 꼭 나와야 해. 알겠지?" 아주머니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축제 당일, 아린은 결국 집에서 나오기로 했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을 수도 없고, 마을에서 계속 살아야 한다면 언젠가는 사람들과 어울려야 했다. 간단히 옷을 갈아입고 바닷가로 향했다.

 

축제장은 생각보다 북적거렸다.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근처 도시에서 온 관광객들도 꽤 있었다. 해변에는 텐트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조개구이와 생선구이 냄새가 바람에 실려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어른들의 대화 소리가 어우러져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아린아!" 순자 아주머니가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 "이쪽으로 와!"

 

아주머니 옆에는 마을 사람들이 몇 명 모여 있었다. 모두 아린을 기억하는 사람들이었다. 인사를 나누며 안부를 묻는 동안, 아린은 생각보다 따뜻한 환대에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조개잡이 해볼래?" 한 아저씨가 물었다. "썰물 때라 지금이 딱 좋은 시간이야."

 

아린은 바다를 바라보았다. 물이 빠진 갯벌에서 사람들이 삽을 들고 조개를 캐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준이와 함께 조개를 캐러 다녔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괜찮아요. 그냥 구경만 할게요."

 

"아, 그래? 그럼 여기 앉아서 쉬어. 조금 있으면 조개구이도 나올 거야."

 

아린은 텐트 그늘 아래 의자에 앉아 축제 풍경을 바라보았다.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이 아이들과 함께 조개를 캐는 모습이 평화로워 보였다. 아이들은 조개 하나만 캐도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고, 부모들은 그런 아이들을 보며 웃고 있었다.

 

"안녕."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도현이었다. 축제 관계자임을 나타내는 노란 조끼를 입고 있었다.

 

"어, 안녕." 아린이 어색하게 인사했다.

 

"나왔구나. 집에만 있을 줄 알았는데." 도현이 옆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아주머니들이 자꾸 나오라고 해서."

 

"그래도 좋잖아. 마을 분위기도 느끼고." 도현이 축제장을 둘러보며 말했다. "예전이랑 비슷하지?"

 

아린은 대답하지 않고 갯벌을 바라보았다. 예전에 준이와 함께 했던 기억들이 자꾸 떠올랐다. 준이는 조개를 캐는 것보다 게를 잡는 걸 더 좋아했었다. 작은 게를 잡으면 양동이에 넣어두고 한참을 구경하다가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곤 했다.

 

"준이 생각하고 있어?" 도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린이 깜짝 놀라며 도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걱정스러워 보였다.

 

"...응. 여기 올 때마다 생각나."

 

"그럴 수밖에 없지. 이곳은 준이와 함께한 추억이 많은 곳이니까."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축제 풍경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아린의 가슴이 아렸다. 준이도 저렇게 컸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스무 살이 된 준이는 어떤 청년이 되어 있었을까.

 

"아린아, 조개구이 나왔어!" 순자 아주머니가 접시를 들고 다가왔다. "도현이도 먹어. 힘든 일 하느라 고생 많아."

 

구운 조개에서 고소한 냄새가 났다. 아린은 몇 개를 먹어보니 바다의 짠맛과 단맛이 입안에 퍼졌다. 생각보다 맛있었다.

 

"맛있지? 올해 조개가 특히 잘 났어." 아주머니가 뿌듯하게 말했다.

 

축제가 진행되면서 아린은 서서히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오랜만에 바다 냄새와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니 마음이 조금씩 편해졌다. 도현도 계속 곁에 있어 주었는데, 말은 많지 않았지만 그의 존재만으로도 안정감이 느껴졌다.

 

해가 기울어갈 무렵, 사람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린도 일어날 준비를 하는데, 도현이 말했다.

 

"같이 걸어갈까? 길이 같은 방향이니까."

 

"응, 그래."

 

두 사람은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축제의 소음이 멀어지고, 파도 소리만이 귓가에 들렸다. 저녁 노을이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오늘 어땠어?" 도현이 물었다.

 

"생각보다 괜찮았어. 사람들이 다 좋게 대해줘서."

 

"다들 너를 기다리고 있었거든. 언제 돌아올까 하면서."

 

아린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자신을 기억하고 기다려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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