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바다의 사고
도현은 한참 동안 바다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고 조심스러웠다.
"그날은 8월 12일이었어. 여름휴가 마지막 주였고, 너는 중학교 2학년, 준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지."
아린은 숨을 죽이고 들었다. 그 날짜는 그녀에게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오전에 비가 조금 왔었어. 그래서 바다가 평소보다 탁했고, 조류도 불규칙했어. 아버지가 오늘은 바다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는데..." 도현이 말을 잠깐 멈췄다. "나는 그냥 등대에서 바다만 보고 있었어. 아무 생각 없이."
"준이가 언제 바다에 들어간 거야?"
"오후 2시쯤이었어. 처음에는 해변에서 모래성만 쌓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다로 뛰어들었어. 파도가 높지 않아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도현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린은 그날을 떠올렸다. 자신은 친구들과 함께 마을 뒤편에서 놀고 있었다. 준이가 혼자 바다에 간다고 했을 때 조심하라고만 했지, 따라가지 않았다. 그것이 평생의 후회가 되었다.
"준이가 왜 혼자 들어간 걸까? 평소에는 무서워했는데."
"그게..." 도현이 주머니에서 작은 종이를 꺼냈다. "이거 때문이었어."
종이를 펼쳐보니 준이의 삐뚤빠뚤한 글씨로 뭔가가 적혀 있었다. '누나 생일선물 찾으러 간다. 예쁜 조개 있는 곳 알고 있어. 금방 올게.'
아린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자신의 생일선물을 찾으러 바다에 들어간 것이었다. 8월 15일이 자신의 생일이었으니, 준이는 며칠 일찍 선물을 준비하려 했던 것이다.
"이 편지는 어디서 찾은 거야?"
"해변에서. 준이가 돌멩이로 눌러놓고 간 거 같아.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도현이 설명했다. "내가 등대에서 망원경으로 보니까 준이가 갑자기 바다로 들어가는 게 보였어. 이상하다 싶어서 급히 내려갔는데."
"그리고?"
"준이는 수심이 깊은 곳까지 들어가 있었어. 평소보다 훨씬 깊은 곳이었어. 아마 예쁜 조개를 찾으려고 한 것 같아." 도현의 손이 떨렸다. "나는 즉시 바다로 뛰어들었어. 하지만 그날 조류가 너무 강했어."
아린은 도현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그의 눈에서도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준이를 찾는 데 얼마나 걸렸어?"
"5분... 아니 10분? 정확히는 모르겠어. 물속에서는 시간 감각이 사라져." 도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했다. "조류에 휩쓸려서 계속 위치가 바뀌었어. 준이도 물살에 떠밀려 다니고 있었고."
도현은 잠시 말을 멈추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표정에서 느껴졌다.
"드디어 준이를 찾았을 때,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어. 물을 너무 많이 마신 것 같았어. 나는 최대한 빨리 해변으로 데려갔지만..." 도현의 목소리가 더욱 작아졌다.
"인공호흡도 시도했어?"
"응. 아버지에게서 배운 응급처치를 다 해봤어. 하지만 준이는 깨어나지 않았어. 119에 신고하고, 병원에 데려갔지만..." 도현은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아린은 그 상황을 상상하며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도현이 얼마나 절망적이었을지, 얼마나 무력감을 느꼈을지 알 것 같았다.
"그럼 준이는 조개를 찾지 못한 거네."
"아니야." 도현이 고개를 저었다. "준이 손에 하나 들려있었어. 정말 예쁜 소라껍데기였어."
도현은 책상 서랍을 열고 작은 상자를 꺼냈다. 상자 안에는 손바닥만한 소라껍데기가 들어있었다. 연한 핑크색에 진주빛이 도는, 정말 아름다운 조개였다.
"이게... 준이가 찾은 거야?"
"응. 병원에서 준이 손에서 떨어뜨린 걸 주워왔어. 너한테 주려고 했는데..." 도현이 소라껍데기를 아린에게 건넸다. "이제야 전해주네."
아린은 조개를 받아들고 눈물을 흘렸다. 8년 늦은 생일선물이었다. 준이가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찾아준 마지막 선물이었다.
"왜 그동안 이걸 혼자 간직하고 있었어?"
"너에게 줄 수가 없었어. 이걸 보면 더 슬퍼할 것 같아서. 그리고..." 도현이 목소리를 낮췄다. "내가 준이를 구하지 못했는데, 이런 걸 전해줄 자격이 있나 싶어서."
"그런 말 하지 마." 아린이 고개를 저었다. "네가 아니었으면 준이를 찾지도 못했을 거야. 그리고 끝까지 노력했잖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도현아." 아린이 도현의 손을 잡았다. "네 탓이 아니야.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던 사고였어. 그날 조류가 그렇게 강할 줄 누가 알았겠어?"
도현은 아린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떨궜다. 8년 동안 혼자 짊어져온 죄책감이 조금이라도 덜어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사실 그 후로 바다가 무서웠어." 도현이 고백했다. "하지만 등대지기는 계속해야 했고, 바다를 피할 수는 없었어. 그래서 매일 바다를 지켜보게 됐어.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아린은 도현의 바다에 대한 집착이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바다를 사랑하면서도 두려워했고, 경계하면서도 지키려 했던 것이다.
"그럼 이제 알겠네." 아린이 조개를 가슴에 안으며 말했다. "준이가 왜 그곳까지 들어간 건지. 그리고 네가 왜 그렇게 바다를 보고 있는 건지."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말없이 앉아있었다. 8년 만에 드러난 진실은 슬프지만, 동시에 오해를 풀어주는 역할도 했다. 이제 둘 다 그날의 진실을 알았고, 각자의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달빛이 머무는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3부: 관계의 틈새_#9. 다시 스며드는 파도 (0) | 2025.10.04 |
|---|---|
| 2부: 바다와 상처_#8. 닫힌 마음 (0) | 2025.10.03 |
| 2부: 바다와 상처_#6. 편지 한 장 (0) | 2025.10.01 |
| 2부: 바다와 상처_#5. 조개잡이 축제 (0) | 2025.10.01 |
| 1부: 귀향과 낯선 재회_#4. 어색한 인사 (0) | 2025.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