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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머무는 시간

4부: 갈라짐과 고독_#13. 바람이 거세진 밤

by emilore 2025.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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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바람이 거세진 밤

 

박미경을 만나러 가기로 한 날,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오후부터 바람이 강해지더니 저녁 무렵에는 완전히 폭풍의 전조를 보이고 있었다. 기상청에서는 태풍 경보를 발령했고, 마을 방송에서는 주민들에게 외출을 자제하라고 안내했다.

 

아린은 창밖을 바라보며 고민했다. 이런 날씨에 나가는 것은 위험했지만, 박미경을 만나는 일을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었다. 소문이 더 퍼지기 전에 진실을 밝혀야 했다.

 

우비를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가니, 바람이 몸을 밀어내려고 했다. 빗방울이 얼굴을 세게 때렸고, 우산은 순식간에 뒤집혔다. 마을 끝까지 가는 길이 평소보다 몇 배는 험난할 것 같았다.

 

그런데 펜션을 향해 걸어가던 중, 등대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삐익- 삐익- 하는 기계음이 바람소리에 섞여서 들려왔다. 아린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등대에서 비상신호가 울리고 있는 것 같았다.

 

'도현이 위험한 건 아닐까?'

 

아린은 한순간 망설였다. 며칠 전부터 도현과 사이가 나빠진 상황에서 그를 걱정하는 자신이 이상했다. 하지만 비상신호가 계속 울리고 있었다.

 

결국 아린은 펜션 대신 등대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언덕길을 올라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바람이 너무 강해서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다. 등대가 가까워질수록 비상신호 소리가 더욱 선명해졌다.

 

등대 관리소에 도착했을 때, 아린은 깜짝 놀랐다. 등대의 회전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불빛이 깜빡거리며 불안정했고, 때로는 완전히 꺼지기도 했다.

 

"도현아!" 아린이 큰 소리로 불렀다.

 

관리소 문이 열리면서 도현이 나타났다. 그의 얼굴에는 긴장과 걱정이 가득했다.

 

"아린아? 이런 날씨에 왜 여기까지..." 도현이 놀라며 말했다.

 

"비상신호가 들려서. 무슨 일이야?"

 

"등대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어. 태풍 때문에 전력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회전 장치가 고장 났어."

 

아린은 등대를 올려다보았다. 바다에서는 어선들이 귀항하려고 하는데, 등대 불빛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119에 신고했어?"

 

"했지만 이 날씨에는 기술자가 올 수 없다고 해. 태풍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데..." 도현의 목소리에는 절망감이 섞여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

 

"수동으로라도 불빛을 유지해야 해. 바다에 어선들이 있어."

 

도현은 다시 등대 안으로 들어갔다. 아린도 따라 들어가니, 좁은 나선형 계단이 위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도현은 무거운 휴대용 발전기와 조명 장비를 들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도와줄게." 아린이 말했다.

 

"아니야, 위험해. 아래에서 기다려."

 

하지만 아린은 이미 발전기의 한쪽을 잡고 있었다. "혼자서는 무리야. 같이 가자."

 

두 사람은 함께 좁은 계단을 올라갔다. 등대 꼭대기에 도착하니 바람이 더욱 거셌다. 유리창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깨질 것 같은 소리를 냈다.

 

도현은 능숙하게 휴대용 발전기를 설치하고 조명을 연결했다. 잠시 후 강한 불빛이 바다를 비추기 시작했다.

 

"이제 수동으로 회전시켜야 해." 도현이 조명 장치를 돌리며 말했다. "몇 시간 동안 계속해야 할 거야."

 

아린은 도현을 도와 조명을 돌리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바람이 너무 강해서 몸을 지탱하기도 어려웠다.

 

"아린아, 정말 고마워." 도현이 조명을 돌리면서 말했다. "혼자였으면 못 했을 거야."

 

"당연한 거 아니야." 아린이 대답했다. 며칠 전의 일로 화가 나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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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번갈아가며 조명을 돌렸다. 바다에서는 어선들이 등대 불빛을 따라 안전하게 항구로 향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아린은 등대지기의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도현아." 아린이 잠깐 숨을 고르며 말했다.

 

"응?"

 

"미안해. 며칠 전에 너무 심하게 말했어."

 

도현은 조명을 돌리던 손을 잠깐 멈췄다. "아니야, 네가 화낼 만했어. 나도 미안해."

 

"너는 나를 보호하려고 한 거잖아. 그런데 나는 그걸 이해하지 못하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너를 더 힘들게 만들었어.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했어야 했는데."

 

태풍이 절정에 달하자 바람이 더욱 강해졌다. 등대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았고, 유리창 하나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위험해!" 도현이 아린을 끌어안으며 유리창에서 멀리 떨어뜨렸다.

 

그 순간 강한 바람이 등대 안으로 들어왔다. 휴대용 발전기가 흔들리며 불빛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발전기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해!" 도현이 소리쳤다.

 

두 사람은 힘을 합쳐 발전기를 바람이 덜한 곳으로 옮겼다. 그리고 깨진 유리창 부분을 임시로 막기 위해 옷가지를 사용했다.

 

몇 시간 동안의 사투 끝에, 태풍이 조금씩 약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어선이 안전하게 항구에 도착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정말 고생했어." 도현이 아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너도. 혼자였으면 정말 위험했을 거야."

 

그 순간 아린은 깨달았다. 도현과의 갈등이 얼마나 사소한 것이었는지를.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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