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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머무는 시간

4부: 갈라짐과 고독_#14. 부서진 등대

by emilore 2025.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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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부서진 등대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 아침, 피해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아린이 등대에 도착했을 때, 도현은 이미 피해를 점검하고 있었다. 밤새 임시로 막았던 유리창 부분뿐만 아니라 등대 외벽에도 균열이 생겨 있었다.

 

"어떤 상태야?" 아린이 물었다.

 

"생각보다 심해." 도현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회전 장치는 완전히 망가졌고, 렌즈에도 금이 갔어. 그리고..." 도현이 등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구조물 자체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아린은 등대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정말로 여러 곳에 손상이 있었다. 특히 등대 중간 부분의 철골이 휘어져 있어서 위험해 보였다.

 

"수리 기사들은 언제 와?"

 

"오늘 오후에 온다고 했는데, 완전한 수리에는 최소 일주일은 걸릴 거래." 도현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럼 그동안 등대는 어떻게 해?"

 

"임시 조명을 설치해야지. 어제처럼 수동으로 계속할 수는 없으니까."

 

오후에 수리 기사들이 도착해서 점검을 시작했다. 그들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아린과 도현은 불안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수리팀장이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등대 상부 구조물의 안전성에 문제가 있습니다. 당분간은 사람이 올라가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럼 등대 불빛은 어떻게 해요?" 도현이 급히 물었다.

 

"임시 조명을 아래쪽에 설치할 수는 있지만, 높이가 낮아서 시야 확보에 한계가 있을 겁니다. 완전한 수리가 끝날 때까지는 어쩔 수 없어요."

 

도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등대의 불빛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어선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

 

"정말 올라갈 수 없는 건가요?"

 

"위험합니다. 태풍으로 인한 구조적 손상이 생각보다 심해서, 추가 하중이 가해지면 붕괴될 수도 있어요."

 

수리팀이 떠난 후, 도현은 한참 동안 등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린은 그런 도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등대, 그리고 바다를 지키는 일에 대한 그의 사명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현아, 너무 걱정하지 마. 임시 조명으로도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시야가 절반도 안 돼. 특히 안개가 끼는 날에는..." 도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날 밤, 도현의 걱정이 현실이 되었다. 바다에 짙은 안개가 끼면서 시야가 거의 확보되지 않았다. 임시 조명의 불빛은 안개에 가려져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오후 11시쯤, 마을 어업조합에서 연락이 왔다. 어선 한 척이 안개 때문에 항로를 잃고 있다는 것이었다.

 

"위치는 어디쯤인가요?" 도현이 급히 물었다.

 

"등대에서 북동쪽으로 약 2킬로미터 지점인 것 같은데, 정확한 위치를 모르겠어요. 무선 교신도 잘 안 돼서."

 

도현은 망원경으로 바다를 살펴봤지만,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임시 조명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해경에는 연락했나요?"

 

"했지만 이 안개로는 헬기도 출동할 수 없다고 해요. 배로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도현은 잠깐 망설이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등대에 올라가야겠어요."

 

"뭐라고요? 위험하다고 했잖아요."

 

"하지만 어선을 구하려면 높은 곳에서 강한 불빛을 쏴야 해요. 아래에서는 안개를 뚫을 수 없어."

 

아린이 급히 도현을 말렸다. "안 돼! 너무 위험해!"

 

"아린아, 바다에 사람이 있어. 내가 올라가지 않으면 그 사람들이 위험해."

 

"하지만 등대가 무너질 수도 있다고 했잖아!"

 

도현은 아린의 손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등대지기야.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아버지라면 분명히 올라가셨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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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은 도현을 말리고 싶었지만, 그의 눈빛에서 확고한 의지를 느꼈다. 그리고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는 어선을 생각하니 도현의 마음도 이해되었다.

 

"그럼 나도 같이 가."

 

"안 돼. 너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어."

 

"혼자 가는 것보다는 둘이 가는 게 안전할 거야. 만약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도와줄 수 있잖아."

 

도현은 잠깐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하지만 정말 조심해야 해."

 

두 사람은 강력한 탐조등과 비상용 밧줄을 준비하고 등대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각 계단마다 조심스럽게 구조물을 확인하면서 천천히 올라갔다.

 

등대 상부에 도착했을 때,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평소보다 더 크게 들렸다. 구조물이 불안정한 상태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도현은 탐조등을 설치하고 바다를 향해 불빛을 비추기 시작했다. 강한 빛이 안개를 뚫고 나가면서 바다 위를 밝혔다.

 

"저기!" 아린이 소리쳤다. "북동쪽에 뭔가 보여!"

 

정말로 안개 사이로 어선의 그림자가 어렴풋이 보였다. 도현은 즉시 탐조등을 그쪽으로 향하게 하고, 일정한 패턴으로 신호를 보냈다.

 

몇 분 후, 어선에서도 응답 신호가 왔다. 도현은 계속해서 불빛으로 안전한 항로를 안내했다.

 

그런데 갑자기 등대가 크게 흔들렸다. 아린은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했고, 도현이 재빨리 그녀를 붙잡았다.

 

"위험해! 내려가자!" 아린이 소리쳤다.

 

하지만 도현은 탐조등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조금만 더! 어선이 거의 안전한 곳에 도착했어!"

 

등대가 다시 한 번 크게 흔들렸다. 이번에는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까지 들렸다. 하지만 도현은 끝까지 불빛을 유지했고, 마침내 어선이 안전한 항구에 도착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됐어! 빨리 내려가자!" 도현이 탐조등을 끄며 말했다.

 

두 사람은 급히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땅에 발을 디딘 순간, 등대 상부에서 큰 소리가 났다. 일부 구조물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였다.

 

아린은 도현을 꽉 안으며 말했다. "정말 무사해서 다행이야."

 

도현도 아린을 안으며 깊은 숨을 쉬었다. "고마워. 너 없었으면 못 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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