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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머무는 시간

3부: 관계의 틈새_#11. 밀려오는 소문

by emilore 2025.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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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밀려오는 소문

 

평온했던 일상에 균열이 생긴 것은 어느 화요일 오후였다. 아린이 마을 슈퍼에서 장을 보고 나오는데, 몇 명의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속삭이듯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았는데, 자신의 이름이 들리자 걸음을 멈췄다.

 

"그런데 아린이가 정말 왜 갑자기 돌아온 걸까?"

 

"글쎄, 도시에서 뭔 일 있었나 봐.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고향에 내려오겠어?"

 

"내가 들은 얘긴데..." 한 아주머니가 목소리를 더욱 낮췄다. "병원에서 사고를 쳤다나 뭐라나. 그래서 쫓겨났다고 하던데."

 

아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사실과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자신은 사고를 친 적도 없고, 쫓겨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소문은 이미 퍼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도 그런데, 준이 사고 때 일도 좀 이상했잖아."

 

"무슨 소리야?"

 

"아린이가 준이랑 같이 놀러 나갔으면서 혼자만 살아서 돌아왔잖아. 누나가 동생을 제대로 안 지켰다는 거야."

 

아린은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날 자신은 준이와 함께 가지 않았다. 준이가 혼자 바다에 간 것이었는데, 왜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일까.

 

"그래서 죄책감에 못 견뎌서 도시로 도망간 거 아니야? 그런데 이제 와서 뻔뻔하게 돌아와서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어서 아린은 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평소보다 훨씬 길게 느껴졌다.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해서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소문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동시에 무서웠다. 지난 한 달 동안 쌓아온 마을에서의 평온한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다음 날 기록실에 갔을 때, 아린은 도현에게 그 일을 털어놓을까 망설였다. 하지만 도현이 먼저 눈치챘다.

 

"어제부터 기분이 안 좋아 보이네. 무슨 일 있어?"

 

"도현아..." 아린이 주저하다가 말했다. "마을에서 나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는 것 같아."

 

"무슨 소문?"

 

아린은 어제 들은 이야기들을 그대로 전했다. 도현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도현이 화를 내며 말했다. "너는 그날 준이와 함께 가지도 않았는데."

 

"그런데 왜 이런 소문이 생긴 걸까?"

 

도현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이 왜곡된 것 같아. 그때 혼란스러웠으니까 사람들이 정확히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해? 이런 소문이 계속 퍼지면..."

 

"걱정하지 마. 진실을 아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도현이 아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도 있고, 그날 상황을 아는 다른 사람들도 있어."

 

하지만 아린의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며칠 후 또 다른 소문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더욱 구체적이고 악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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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 아주머니가 조심스럽게 아린에게 알려준 것이었다. "아린아, 이런 말 하기 싫지만... 요즘 마을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어."

 

"어떤 소문요?"

 

"네가 도시에서 환자를 잘못 돌봐서 사망사고를 냈다는 소리야. 그래서 의료진 면허도 박탈당했다고... 물론 나는 안 믿어. 하지만 몇몇 사람들이 진짜인 것처럼 떠들고 있어."

 

아린은 충격을 받았다. 도대체 누가 이런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는 것일까.

 

"그리고..." 순자 아주머니가 더욱 조심스럽게 말했다. "준이 일에 대해서도 말이 많아. 네가 동생을 질투해서 일부러 혼자 두었다는 식으로..."

 

"그런 말도 안 되는..." 아린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린아, 너무 신경 쓰지 마. 진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런 소문 안 믿어. 하지만 조심해야 해. 소문이라는 게 무서운 거거든."

 

그날 밤, 아린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리고 이런 소문들이 계속 퍼져나간다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되었다. 특히 준이에 대한 소문이 가장 괴로웠다. 동생을 그 누구보다 사랑했는데, 질투했다니.

 

며칠 후, 아린은 기록실에서 도현과 함께 있을 때 결정적인 순간을 맞았다. 기록실 문이 갑자기 열리면서 한 중년 남성이 들어왔다. 마을에서 어업조합장을 하는 김 씨였다.

 

"도현아, 있었구나." 김 씨가 말했다. 그러다가 아린을 보자 표정이 바뀌었다. "아, 윤아린 씨도 여기 계시네."

 

"안녕하세요." 아린이 인사했다.

 

"도현아, 잠깐 할 말이 있는데 밖에서 이야기할까?" 김 씨가 도현을 밖으로 부르는 신호를 했다.

 

도현은 아린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더니 따라 나갔다. 하지만 기록실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서 대화가 들렸다.

 

"도현아, 요즘 마을에서 소문이 많은데 알고 있지?"

 

"무슨 소문 말씀이세요?"

 

"윤아린 씨 말이야. 도시에서 의료사고 냈다는 소문도 있고, 옛날 준이 일도 다시 거론되고 있어. 네가 그 아가씨랑 많이 어울리는 것 같은데, 조심하는 게 좋겠어."

 

"그런 소문들은 사실이 아니에요."

 

"그래도 말이 많으면 좋지 않잖아. 너는 등대지기고, 마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니까 신중해야 해."

 

아린은 가슴이 아팠다. 자신 때문에 도현까지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 같았다. 소문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누가 퍼뜨리는 것인지 알고 싶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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