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불편한 동행
일주일이 지나고, 민호와 수아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지훈의 촬영 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두 사람은 자주 마주쳐야 했지만, 어떻게 대해야 할지 서로 어색해했다.
월요일 오전, 민호는 평소보다 일찍 서점을 열었다. 지훈이 오전 촬영을 위해 일찍 온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커피를 내리며 창밖을 보니 수아의 공방에서도 불이 켜져 있었다. 그녀도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형! 준비됐어?" 지훈이 카메라 장비를 잔뜩 들고 나타났다. "오늘은 두 사람이 각자 일하는 모습을 교대로 찍을 거야. 자연스럽게 해주면 돼."
민호는 평소처럼 책을 정리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을 연출해야 했다. 하지만 카메라가 있다는 생각에 모든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다. 책을 잘못 꽂기도 하고, 계산기를 두 번 눌러서 틀리기도 했다.
"너무 의식하지 마. 평소대로 해." 지훈이 조언했지만, 민호는 쉽게 긴장을 풀 수 없었다. 특히 맞은편 공방에서 수아가 이쪽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더욱 어색했다.
오후에는 수아의 차례였다. 민호도 지훈을 따라 공방으로 갔다. 수아는 물레 앞에 앉아 그릇을 만들고 있었는데, 평소보다 훨씬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민호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듯했다.
"수아씨,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민호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그 순간 수아의 손이 흔들렸고, 만들던 그릇이 형태를 잃고 말았다.
"아..." 수아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해요. 다시 할게요."
"괜찮아요. 저 때문인 것 같은데..." 민호가 미안해하자, 수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제가 집중을 못한 거예요."
지훈은 이런 어색한 분위기를 포착했다. 두 사람 모두 서로를 의식하느라 평소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다. "잠깐, 쉬자. 커피나 한 잔 하면서."

카페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았다. 민호는 말을 꺼내려다가 망설이기를 반복했고, 수아는 커피잔만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두 사람 뭔 일 있어요?" 지훈이 직접적으로 물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어색한데?"
"별일 없어." 민호가 대답했지만, 목소리에 확신이 없었다. 사실 그 자신도 왜 이렇게 어색한지 잘 모르겠었다. 수아에게 관심이 생기면서 오히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진 것이다.
수아도 비슷한 심정이었다. 민호와 대화할 때면 자꾸 프랑스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처음엔 친절했지만, 나중에는 그녀의 작품을 평가절하하고 무시했던 기억. 또다시 누군가와 가까워진다는 것이 두려웠다.
"사실은..." 수아가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자신의 불안감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민호는 수아의 망설임을 보며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혹시 자신이 부담을 주고 있는 건 아닐까? 그는 원래 신중한 성격이었는데, 수아 앞에서는 더욱 신중해졌다. 실수하거나 잘못 말해서 그녀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지훈이 분위기를 정리했다. "다음에 다시 촬영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돌아가는 길에 민호와 수아는 나란히 걸었지만, 대화는 거의 없었다. 골목 끝에서 헤어질 때 수아가 먼저 말했다. "민호씨, 혹시 제가 뭔가 잘못했나요?"
"아니에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민호가 놀라며 물었다.
"요즘 저랑 대화하실 때 너무 조심스러워하시는 것 같아서..." 수아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묻어 있었다.
민호는 잠시 망설이다 솔직하게 말했다. "사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수아씨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저도 그래요." 수아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게... 조금 무서워요."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 같은 마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색함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다음날부터 일주일 동안,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민호는 수아가 서점에 올 때마다 과도하게 정중하게 대했다.
"안녕하세요", "필요한 책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천천히 보세요" 같은 격식적인 말들만 반복했다.
수아도 마찬가지였다. 책을 고를 때도 "죄송한데요", "괜찮으시면", "혹시" 같은 말을 자주 사용했다. 자연스러운 대화는 점점 줄어들었다.
지훈은 이런 상황을 지켜보며 답답해했다. "두 사람 뭐하는 거야? 처음 만날 때가 더 자연스러웠는데."
"별로 어색하지 않은데?" 민호가 부정했지만, 누가 봐도 어색한 상황이었다.
목요일 저녁, 수아는 공방에서 혼자 작업을 하다가 실수로 찻잔을 떨어뜨렸다. 며칠 전부터 만들어온 것이었는데 산산조각이 났다. 그 순간 프랑스에서의 기억이 밀려왔다.
"정씨, 당신의 작품에는 감정이 없어요. 기술만으로는 예술이 될 수 없습니다."
마르탱 교수의 말이 다시 들리는 것 같았다. 수아는 깨진 찻잔 조각을 치우며 눈물이 났다. 왜 이렇게 모든 게 어려울까? 작품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맞은편 서점에서는 민호가 책을 읽고 있었다. 하지만 집중이 되지 않았다. 자꾸 수아 생각이 났다. 그녀가 왜 그렇게 조심스러워하는지, 자신이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날 밤 두 사람은 각자의 공간에서 같은 생각을 했다. '이렇게 어색한 관계를 계속 이어가야 하나?'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동시에 존재했다. 서로에 대한 관심은 분명했지만, 그 관심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었다.
골목에는 여전히 따뜻한 불빛들이 켜져 있었지만,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오히려 처음보다 더 멀어진 것 같았다. 봄바람이 불어와도 마음의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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