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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머무는 시간

5부: 진실과 화해_#17. 바다의 증언

by emilore 2025.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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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바다의 증언

 

마을 끝의 펜션은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린과 도현이 도착했을 때, 펜션 주인이 나와서 반갑게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박미경 씨 찾으시는 거죠? 방금 전에 바닷가로 내려가셨어요."

 

두 사람은 펜션 뒤편의 작은 해변으로 향했다. 멀리서 혼자 서 있는 여성의 뒷모습이 보였다.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성이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저분이 박미경 씨인 것 같네." 도현이 작게 말했다.

 

두 사람이 다가가자, 박미경이 뒤돌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함께 어떤 각오 같은 것이 스쳐갔다.

 

"윤아린 씨죠?" 박미경이 먼저 말을 걸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린은 그 말에 당황했다. "기다리고 있었다고요?"

 

"네. 언젠가는 만나게 될 줄 알았어요. 특히 제가 이 마을에 온 이후로는."

 

도현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혹시 박미정과 관련이 있으신가요?"

 

박미경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그녀는 잠깐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박미정은... 제 여동생이에요."

 

아린은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역시 연관이 있었던 것이다.

 

"그럼 8년 전 일을 아시는 거네요." 아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모든 걸 알고 있어요." 박미경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리고...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박미경은 모래사장에 주저앉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정이는 그때 열한 살이었어요. 저희 가족은 아버지 사업 때문에 이 마을 근처에 잠깐 머물고 있었죠. 미정이는 활발한 아이였는데, 바다에 대해서는 잘 몰랐어요."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요?" 도현이 물었다.

 

"미정이가 마을에서 준이라는 아이를 만났대요. 그 아이가 누나 생일선물을 찾고 있다고 하니까, 미정이가 도와주고 싶었던 거죠."

 

박미경은 잠깐 말을 멈추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미정이는 며칠 전에 다른 아이들에게서 '예쁜 조개가 나오는 곳'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하지만 그 아이들이 장난으로 한 말이었고, 실제로는 위험한 곳이었던 거죠."

 

아린은 숨을 죽이고 들었다.

 

"미정이는 그걸 몰랐어요. 그냥 선의로 준이에게 그 장소를 알려준 거예요. 하지만..." 박미경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 후에 어떻게 된 건가요?" 아린이 물었다.

 

"미정이는 준이가 혼자 바다에 간 줄 몰랐어요. 함께 가려고 했는데, 준이가 혼자 가겠다고 했대요. 미정이는 그냥 펜션에 돌아왔죠."

 

박미경이 고개를 떨구며 계속했다.

 

"한 시간 후에 마을에서 소란이 일어났어요. 준이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미정이는 완전히 패닉 상태가 됐어요. 자신이 잘못된 정보를 준 게 아닌가 하면서."

 

"그래서 갑자기 떠나신 거군요."

 

"네. 부모님도 놀라셨고, 미정이 상태도 심각했어요. 병원에 데려가야 할 정도였죠. 그래서 그날 밤 급히 서울로 올라갔어요."

 

도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왜 지금 와서 소문을 퍼뜨리신 건가요?"

 

박미경이 고개를 들어 아린을 바라보았다.

 

"미정이가... 작년에 죽었어요."

 

아린과 도현은 충격을 받았다.

 

"교통사고였어요. 그런데 죽기 전에 미정이가 계속 그 일을 괴괴하게 여겼어요. 준이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했거든요."

 

박미경의 목소리가 더욱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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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이가 마지막에 저한테 부탁했어요. 윤아린이라는 사람을 찾아서 사과하라고. 그리고 진실을 알려달라고."

 

"그럼 소문은 왜 퍼뜨린 거예요?" 아린이 화가 나서 물었다.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 아니었어요. 그냥 찾아와서 사과하려고 했는데..." 박미경이 말을 멈췄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준이 사고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었어요. 모두 아린 씨 탓이라고 하더라고요. 누나가 동생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면서."

 

아린은 가슴이 아팠다.

 

"그걸 듣고 화가 났어요. 진짜 책임져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엉뚱한 사람이 비난받고 있으니까. 그래서..." 박미경이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아린 씨도 똑같이 비난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미정이가 그런 고통을 받았으니까, 아린 씨도 받아야 한다고."

 

도현이 화를 내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린이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저도 알아요!" 박미경이 소리쳤다. "지금은 제가 잘못 생각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그때는... 미정이가 죽고 나서 너무 화가 났어요."

 

박미경은 울면서 계속했다.

 

"미정이는 8년 동안 그 일 때문에 괴로워했어요. 상담도 받고, 치료도 받았지만 나아지지 않았어요. 준이라는 아이가 자신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면서 살았거든요."

 

아린도 눈물이 났다. 미정이라는 아이도 피해자였던 것이다.

 

"미정이도 피해자였네요." 아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그런데 저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원망했어요. 정말 미안해요."

 

박미경은 아린 앞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미정이를 대신해서, 그리고 제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드려요. 용서해주세요."

 

아린은 박미경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일어나세요. 이제 모든 걸 알겠어요. 미정이도, 당신도, 그리고 저도... 우리 모두 피해자였어요."

 

바다에서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8년 동안 숨겨져 있던 진실이 마침내 드러났다. 이제 모든 것이 시작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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