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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머무는 시간

6부: 새로운 시작_#22. 함께 쓰는 일기

by emilore 2025.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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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함께 쓰는 일기

 

기록보관소 프로젝트가 본격화되면서, 아린과 도현은 매일 저녁 함께 그날의 일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업무 보고였지만, 점차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

 

"오늘 박 할아버지께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셨어." 아린이 노트에 뭔가를 적으며 말했다.

 

"어떤 이야기?"

 

"옛날에는 아이들이 바다에서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거야. 유리병에 편지를 넣어서 바다에 띄우면, 다른 마을 아이들이 주워서 답장을 보내주곤 했대."

 

도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낭만적이네. 지금은 핸드폰이 있으니까 그런 일은 없겠지만."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우리도 일기를 써보는 게 어떨까? 바다 편지처럼, 서로에게 쓰는."

 

도현은 아린의 제안에 관심을 보였다. "어떻게?"

 

"각자 하루 있었던 일이나 느낀 점을 써서 서로 읽어보는 거야. 대화로는 말하기 어려운 것들도 글로는 표현할 수 있잖아."

 

그렇게 시작된 '바다 일기'는 두 사람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었다. 아린은 분홍색 노트에, 도현은 파란색 노트에 매일 한 페이지씩 써서 서로 교환했다.

 

"오늘 김 할머니 인터뷰를 하면서 깨달은 게 있어. 어른들의 기억 속 아이들은 모두 밝고 행복해. 힘든 일이나 슬픈 일은 잘 기억하지 않더라. 어른이 되면서 좋은 기억만 남게 되는 걸까? 나도 언젠가 준이를 떠올릴 때 슬픔보다는 웃음이 먼저 생각날까?" - 아린의 일기

 

"등대 점검을 하다가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어.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아린이와 내가 함께 일하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셨을 것 같아. 특히 기록보관소 프로젝트는 아버지가 항상 꿈꾸던 일이었거든. 마을의 이야기를 보존하는 것. 이제 그 꿈이 이루어지고 있어." - 도현의 일기

 

일기를 통해 두 사람은 서로의 내면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아린은 여전히 가끔 준이를 그리워했고, 도현은 아버지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런 감정들을 나누면서 조금씩 치유되어 갔다.

 

어느 날, 아린은 특별한 제안을 했다.

 

"도현아, 우리가 쓴 일기들을 나중에 기록보관소에 기증하는 게 어떨까?"

 

"우리 일기를?"

 

"응.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도 언젠가는 마을의 역사가 될 거야. 미래의 누군가가 이 시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도현은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야. 하지만 너무 개인적인 내용은 빼고."

 

"당연하지. 공개해도 괜찮은 부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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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부터 두 사람은 조금 더 신중하게 일기를 썼다. 개인적인 감정뿐만 아니라 마을의 변화, 사람들과의 만남, 계절의 변화 등을 세심하게 기록했다.

 

"오늘 순자 아주머니가 말씀하시길,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마을에 관심을 갖는 게 신기하다고 하셨어. 예전에는 다들 떠나기만 했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 남아서 뭔가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희망적이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 떠나는 것만이 답은 아니야." - 아린의 일기

 

"태풍 피해 복구가 모두 끝났어. 새로 설치된 등대 장비들이 이전보다 훨씬 성능이 좋아서 더 먼 곳까지 불빛을 보낼 수 있어. 마치 우리의 미래처럼. 전보다 더 멀리, 더 밝게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아." - 도현의 일기

 

두 달이 지나자, 두 사람의 일기는 상당한 분량이 되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은 단순한 개인 기록을 넘어서 마을의 현재를 담은 소중한 자료가 되어 있었다.

 

"이거 정말 기증할 거야?" 도현이 두꺼워진 노트를 보며 물었다.

 

"응.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고, 나중에 우리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됐을 때." 아린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때까지 계속 쓸 거야?"

 

"당연하지. 이제 습관이 됐잖아."

 

저녁 노을이 기록실 창문을 물들였다. 두 사람은 각자의 노트에 오늘 하루를 정리하며 내일을 준비했다. 글로 나누는 대화는 말보다 더 깊은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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